공동주택관리법안 논란되자 국토부에 책임 떠넘기기

이른바 ‘김성태 공동주택관리법안’이 특혜입법으로 논란이 일자 김 의원측은 일부 언론에 “부끄럽긴 하지만 그건 청부입법이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자신이 대표발의한 건 맞지만 법안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따라서 책임도 국토교통부가 져야할 것이니 나한테 따지지 마라, 이런 의미다,

이 법안이 아파트입주민들의 권익은 내팽개친 채 특정 이익단체에 이권을 몰아주거나, 불요불급한 관피아 위원회만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나온 책임떠넘기기다.

청부입법?

청부살인이라는 말은 종종 뉴스에 등장하지만 청부입법은 일반 국민에게는 영 생소한 단어다.

청부입법은 정부가 국회의원한테 입법안을 거의 다 만들어주고 발의자로 이름만 빌리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의원이 무슨 복덕방 면허증도 아니고 여기저기 이름을 빌려주냐 싶겠지만, 불행히도 우리 국회에서 청부입법은 오래전부터 고질병 중 하나로 성행해왔다. 이젠 국회의원은 물론 정부 부처 공무원이나 장관들도 청부입법을 하는데 아무런 죄의식도 없어 보인다.

엄연히 변칙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법행위일 수 있지만 그걸 막을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할 자가 또한 국회의원이다보니, 처벌규정 마련도 기대난망이다.

헌법상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은 국회의원뿐아니라 정부에게도 있다. 정부는 일반 법률안뿐아니라 조약안, 예산안 등도 국회에 제출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외연으로만 보면 국회의원보다 더 넓은 법률안 제출권을 갖고 있다. 우리 헌법의 의원내각제적 요소 중 하나다.

청부입법이 성행하는 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직업인 법만들기 성과를 가만히 앉아서 한 건 챙길 수 있다. 김성태 의원 케이스처럼 당사자가 이건 청부입법이다고 고백하지 않는 한 그것이 청부입법인 지 국회의원이 직접 연구해서 만든 것인지 알길이 없다.

아마 김성태 의원도 이번 건이 보도되지 않은채 조용히 입법절차가 진행됐다면, 자신이 대표발의한 공동주택관리법 덕분에 이젠 층간소음 문제 등 큰 사회적 문제를 풀 수 있게 됐다고 큰소리 팡팡 치며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정부입장에서는 입법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고, 국회의원에게 실적이라는 떡밥을 준 만큼 보다 원할한 국회통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부입법 처리과정./그래픽=이언하 기자

정부가 입법안, 특히 법을 새로 만드는 제정안을 낼 때는 국민참여를 위한 다양한 코스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정부입법의 경우 정상적인 절차는 ‘입안⇒ 관계부처 협의 ⇒ 당정협의 ⇒입법예고 ⇒공청회 등 여론수렴절차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 국무회의 ⇒ 대통령 재가 ⇒ 국회제출’ 등 총 10여개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반면 의원입법은 ‘법률안 작성 ⇒ 발의 의원 10명이상 사인 ⇒ 국회 상임위 제출’, 이 3단계로 끝이다.

정부로서는 대표발의할 국회의원 한명만 잘 꼬시면 골치아픈 절차 싹 생략하고 법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청부입법은 김성태 의원측이 말했듯이 ‘부끄러운’ 일 정도가 아니다.

청부입법은 사실상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를 무시하고 권력자들끼리 짜고 치는 대국민 사기극이자 헌정질서 파괴행위다.

청부입법한 정부부처 장관은 탄핵 감이다. 형사법적으로도 독한 판사 만나면 최소한 직무유기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름을 빌려주고 실적을 챙기려고 한 국회의원도 최소한 국회 윤리위원회 회부감이다.

청부입법이 엄격히 통제돼야 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입법 과정에 국민이나 이해당사자들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상실한다는 점이다. 의원입법의 경우에도 국회 홈페이지 안에 ‘의안정보시스템’이라는 것을 통해 법안 처리 과정을 확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공개를 위한 공개에 불과하다.

의원입법 과정에서 일반 국민이나 관련분야 전문가, 이해당사자 등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사실상 원천봉쇄 돼 있다. 국회가 의안심사 과정에서 별도의 청문회나 공청회, 전문가 협의 등을 열지 않는 한 쥐도새도 모르게 법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면 정부입법의 경우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해 다양한 채널을 거치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공청회이고, 인터넷 상에도 법제처가 운영하는 국민참여입법시스템(community.klaw.go.kr)을 통해 입법 프로세스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물론 국민이나 이해관계자, 전문가 등이 법안에 대해 의견개진을 할 수도 있다.

국민참여입법시스템 홈페이지./법제처

특히 공동주택관리법처럼 이해당사자간 이해 대립이 심하고 국민 혈세가 예산으로 투입되는 사안은 반드시 공청회 등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고 정부의 공식 방침도 그렇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아파트 관리의 3 주체, 즉 아파트 입주민대표와 관리사무소장, 관리소장을 파견하는 주택관리회사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는 것도 큰 임무다.

당연히 법안에 대해 3자가 할 말도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와 서승환 장관이 이를 김성태 의원한테 청탁해 의원 입법으로 상정하는 바람에 이들 3자 중 유일하게 국토부 및 김성태 의원측과 끈이 있는 관리사무소장 모임, 즉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채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됐다.

아파트 입주민 대표 모임인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모임연합회와 주택관리회사들의 모임인 한국주택관리협회 등은 법안 성립과정에서 한마디 의견도 개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당연히 분란이 일어났고, 아파트 입주민 대표들은 이달 중으로 대규모 총궐기 대회까지 도모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법의 목적 중 하나가 이해관계 조정을 통한 국민통합인데, 국토부라는 정부부처가 꼼수를 두는 바람에 국민 분열 거리만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이 탄핵돼어 마땅한 이유 중 하나다.

둘째, 입법로비 또는 입법거래 의혹의 증폭이다. 청부입법의 본질은 은밀함, 폐쇄성이다. 뭔가 실체를 숨길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이 서로 떡밥을 주고 받으면서 짜고 치는 것이 청부입법의 본질이다. 서로 챙길 것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빌려주는 것이고, 수고스럽게 만든 법안을 남의 성과물로 헌사하는 것이다.

공동주택관리법안의 경우 이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국토부 퇴직 관료들을 위한 우수한 직장이 우수수 생긴다. 중앙공동주택분쟁조정위원회와 공동주택관리 지원기구 라는 것이 그렇다.

중앙분쟁조정위원회는 애초 올 봄 층간소음 다툼으로 칼부림이 나고 심지어 살인사건까지 터지면서 국토부가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 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있는 자격자 중에는 당연히 고위공무원 출신도 끼어있다.

하지만 국토부에는 이미 하자분쟁조정위원회라는 유사 조직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조금만 손질하면 층간소음이나 관리비 분쟁 등을 조정하는 정부 역할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위원회가 할 가장 큰 임무가 층간소음 다툼 조정인데, 이 업무는 이미 환경부의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옥상옥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공청회 등 정부입법 절차를 따랐다면 굳이 연간 6억여원의 혈세를 들여서 새로 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는 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공동주택관리 지원기구라는 것도 설립목적 자체가 애매모호할뿐더러 이 조직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 연간 12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이 또한 국토부 퇴직관료용 관피아 조직 또는 특정 단체 이권몰아주기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국토부 관리들이 이 법안을 정부입법이 아니라 의원입법으로 추진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층간소음 해결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은밀하고 재빠르게 관피아 조직 두 개를 또 만들려고 한 것이다.

청부입법에 이름을 빌려주는 국회의원도 로비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식적으로 이름을 빌려주는데 보상을 원하지 않았다면 되레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김성태 의원의 경우도 이 법안의 최대 수혜자인 대한주택관리사 협회의 김찬경 회장과 경남 동향으로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있다. 두사람 간에 그렇고 그런 거래가 있었고 국토부는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김 의원의 편의를 봐주었을 것이라는 의구심은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다.

김 의원도 은밀함이 필요했던 것같다.

공동주택관리법안에 서명한 국회의원 10명은 김 의원말고 김기선 김세연 김용태 박명재 유승우 이완영 정문헌 주영순 최봉홍 의원 등이다.

이들은 전부 새누리당 소속이거나 새누리당에서 출당된 인물이다. 야당을 비롯한 타 정당 소속원은 1명도 없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 이 법안의 소관 상임위인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은 대표발의 한 김 의원을 빼면 이완영(경북 고령군 성주군 칠곡군) 의원 1명밖에 없다.

입법 발의 서명을 굳이 소속 상임위 의원한테 받아야 한다는 강제규정은 없다. 하지만 공동주택관리법처럼 내용이 전문적이고 예산이 소요되는 법안을 타 상임위의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발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봐도 꼼수 냄새가 나는 일이다.

김 의원이 앞뒤 전말을 잘 아는 의원에게는 이 법안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짐작할 수 밖에 없다.

법은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지고지순한 가치기준이다. 누구도 법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는 없다. 법이 신뢰를 잃으면 곧 공동체가 위태로워진다.

국회의원에게 막강한 권한과 특혜를 주는 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고 그들이 만드는 법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부입법은 이런 법의 순수성을 해치고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김성태 의원과 서승환 장관은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역대 국회 입법 현황. 정부입법은 정체상태인 반면 의원입법은 급증하는 추세다.

그렇다고 국토부가 정부입법을 추진한 실적이 적은 것도 아니다. 최근 1년간 국토부가 개정안 또는 제정안을 내놓은 법률안은 39개에 이른다.

부동산거래신고에 관한 법률 제정안, 공항시설법 제정안, 항공사업법 제정안, 항공안전법 제정안, 항공안전기술원법 제정안, 주택법 개정안, 건축사법 개정안, 부동산투자회사법 개정안, 새만금사업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 철도안전법 개정안,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 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 철도사업법 개정안,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개발이익환수에 관한법률 개정안,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거래신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 댐 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개발이익환수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토지이용규제기본법 개정안, 국가통합교툥체계효율화법 개정안, 건축물의 분양에 관한 법률 개정안,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 등이다.

국토부 하급 관리들은 지금도 이러저러한 법안 만드느라고 죽어라 일하면서 충성하고 있는 것이다.

서승환 장관과 몇몇 간부들이 국회의원 한명과 장난을 치는 바람에 국토부 전체 공무원들이 졸지에 비민주적인 폐쇄적 꼼수쟁이로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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