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른바 ‘이학수 특별법안’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입법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재계와 정치권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식명칭이 ‘특정 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불법이익환수법)인 이 법안은 50억원이상 배임∙횡령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이로부터 생긴 재산이나 보수를 범죄자 또는 제3자로부터 강제 환수한다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박 의원은 이르면 16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공동발의자 70명은 대부분 야당 의원들이나, 새누리당에서도 정희수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 등 2명이 참여했다.

박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범죄를 통한 부당한 부의 상속현상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대다수 국민들의 근로의욕을 상실시켜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뿐만 아니라 유사범죄를 추구하는 그릇된 충동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거액의 횡령과 배임 등의 범죄에 따른 수익은 국가가 반드시 환수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 국가의 기강과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법안 입법 추진 동기가 삼성 등 일부 재벌의 편법적인 상속과 대물림 시도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문제는 이 법안이 △특정인을 겨냥한 처분적 법률로 삼권분립과 평등권에 위배될 수 있고 △ 소급입법으로 재산권을 침해하는 결과가 되며 △ 이미 민∙형사적으로 처벌을 받은 사건에 대해 다시 불이익을 주게 돼 일사부재리 원칙에도 반한다는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법안이 그대로 입법화돼 집행에 들어가면 위헌법률 심판이나 헌법소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는 게 법조계 반응이다.

하지만 유사 입법 사례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례와 대법원 판례를 살펴봤을 때 이학수법이 위헌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분석 또한 만만찮다.

◆ 처분적 법률성, 평등권 위배 여부

50억원 이상 배임횡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이 확정됐고 그로부터 거액의 수익이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는 박 의원도 거론했듯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건이다.

1999년 삼성SDS BW를 인수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이학수 전 삼성부회장, 김인주 전 삼성선물 사장 등은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았다.

삼성측이 공개한 당시 BW 배정가격은 1주당 7150원인데, 14일 현재 삼성SDS 주가는 주당 24만2000원이다.  15년만에 33.8배 뻥튀기된 셈이다.

이들의 삼성SDS 지분가치는 이재용 부회장 2조1064억원, 이부진∙이서현 사장 각각 7305억원, 이학수 전 부회장 7744억원, 김인주 전 사장 3194억원이다.

박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속칭 ‘이학수법’이라고 하는 이유도 당시 삼성SDS 이사였던 이 전 부회장이 삼성 3세들과 자신을 돈방석에 앉히기 위해 계획적∙주도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세간의 눈총을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이 건 말고는 딱히 이학수법이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 없다는 점이다. 박영선 의원 스스로도 이 법안이 삼성SDS 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인정한다.

박 의원은 13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건의 경우 2009년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배임행위 결과 취득하게 된 주식을 몰수하지 않아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시세차익을 얻는 것은 범죄의 목적 달성을 추인해 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삼성SDS 건만을 겨냥한 처분적 법률로서 헌법상의 평등권 규정에 위반한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다수 법조인들의 의견이다.

처분적 법률은 특정 국민이나 법인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으로 입법이 직접 행정∙사법기능까지 하는 격이 돼 삼권분립원칙에 어긋나고 평등권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법원칙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BBK특별검사법 위헌소송에서 처분적 법률 여부가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당시 헌법재판소는 “처분적 법률의 정의가 우리 헌법에 없고 이를 금지한다는 규정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14일부터 실제 적용에 들어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상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단속되는 기업이나 재벌총수 일가도 이학수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계열사 부당지원행위)로 적발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형법상 배임 책임도 함께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반적 규제입법 성격을 갖는 만큼 처분적 법률 논란은 이학수법에 관한 한 크게 문제될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 소급입법금지 위배 여부

박영선 의원은 이학수법을 형사법이 아니라 민사법의 일종으로 구성했다. 형벌의 경우 소급입법에 의한 처벌은 전 근대적인 권력 남용으로 간주돼 철저히 배제된다.

행위 당시에는 합법이었는데 나중에 만든 법으로 이를 범죄로 규정해 처벌한다면 법의 예측가능성과 신뢰원칙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이학수법은 법무부장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에 신청해 절차를 시작하고 이해관계인이 이의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불법이익환수를 진행하도록 했다.

즉 민사소송법을 준용한 절차가 적용되도록 한 것이다. 형사법 절차를 따를 경우 제기될 수 있는 소급입법에 의한 처벌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제13조에서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다.

소급입법에 의해서는 형사처벌 뿐 아니라 재산권 침해라는 민사적인 규제도 할 수 없다는 게 헌법의 기본적인 태도인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소급입법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금지된다는 게 다수 의견이지만 예외적인 경우도 인정하고 있다.

이학수법과 유사한 사례로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있다.

헌재는 이 법이 소급입법으로 후손들의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 “소급입법이라고 해도 예외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와 같이 정당화되는 경우에는 허용된다”며 합헌결정(2008헌바141)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또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위헌신청 사건(96헌가2)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의 공소시효 완료와 소급입법 주장에 대해 “설사 진정소급입법이라고 해도 △보호해야 할 신뢰이익이 적은 경우 △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경미한 경우 △ 신뢰보호 요청에 우선하는 심히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있는 경우 에는 위헌이 아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전두환법)’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유병언법)’에도 소급입법 규정이 있다.

전두환법은 부칙에서 “이법 시행 전 행한 뇌물죄 범죄행위로 범인 또는 정을 아는 제3자가 받은 뇌물에 대해서도 이 법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병언법 부칙에도 “이 법 시행 전에 발생한 범죄수익에 관하여 이 법 시행 후에 한 행위에 대해서도 몰수보전처분 등 이 법규정을 적용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 두 법에 대해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유병언 측에서 위헌법률 심판 등을 청구하지 않아 헌재의 입장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학수법의 소급입법 논란과 관련해 주요한 참고사항이 될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소급입법이라고 해서 헌재나 대법원이 그 법을 무조건 위헌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위헌성 여부는 개별 사례별로 판단하겠다는 것이 헌재의 입장인 만큼, 이학수법이 입법화돼 실제 적용단계까지 가더라도 결국은 이해당사자들의 신청에 의한 위헌심판 절차를 거칠 가능성이 높다.

◆일사부재리원칙 위배 여부

형사사건의 경우 한번 기소돼 재판을 받으면 설사 절차나 내용에 하자가 있더라도 다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일은 없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 정립된 일사부재리의 원칙 때문이다.

헌법은 제13조에서 “모든 국민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받지 않는다”며 이를 기본권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삼성SDS BW 저가발행 사건의 경우 이학수법이 적용되면 이중처벌을 받는 격이 돼 일사부재리원칙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2009년 8월 이 사건 확정판결에서 이건희 회장은 배임 및 조세포탈죄로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 형을 선고받았다. 이학수∙ 김인주 전 SDS 이사들도 역시 배임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됐다.

이 회장은 형벌 외에도 BW 저가발행에 따라 삼성SDS가 입은 손해 227억원과 지연이자 130억원을 배상하고, 증여세 443억원을 국가에 납부해야 했다.

이 회장 일가는 불법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는 뜻에서 사재 5208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도 표명했다.

결국 삼성측으로서는 유죄판결에 따른 형벌과 민사적인 손실보상 등을 다 감수했는데, 이학수법에 의해 또다시 재산을 박탈당하는 것은 이중처벌로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사부재리는 원칙적으로 형사법 영역의 원칙이고, 민사절차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민사소송법상으로는 설사 확정판결을 받은 사안이라고 해도 다시 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박영선 의원도 이를 의식해 이학수법을 형사절차가 아닌 민사절차에 따라 진행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배임 등 불법행위에 의해 취득한 재물이나 이익을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재산권의 범주에 넣어 소급입법이나 이중처벌 금지원칙 등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지 근본적으로 의문이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삼성측에서는 이학수법이 형식상 민사절차에 따르지만 실 내용은 재산권 박탈이라는 형벌 유사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을 들어 헌법소원 등을 통해 일사부재리원칙 위배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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