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누구나 인정하는 창업국가(Startup Nation)다. 이를 상징하는 제도 중 하나가규제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다. 한국핀테크연구회(회장 배재광)가 2015년부터 규제샌드박스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여 2018년 혁신금융지원법을 이끌어 냈다. 당시 규제샌드박스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함께 대표적인 창업국가(Startup Nation)이며 창업국가를 지향한다. 정부의 수장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글로벌기업인 삼성전자부터 대학연구실 스타트업까지 벤처와 혁신을 이야기 한다. 창업국가의 전형이다. 특허 출원수나 GDP 대비 연구개발비(R&D) 비율, 벤처캐피탈투자액 등 지표를 보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세계 5위의 규모를 가진 창업국가임에 틀림없다.

OECD가 2018년까지 매년 발표했던 ‘기업가정신에 관한 보고서(Entrepreneurship at a Glance)’에는 각국의 혁신관련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다. 한국은 대부분 지표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료에서와 같이 문재인 정부들어서는 벤처캐피탈의 양적 성장이 두드러 졌다. 2021년 여러 OECD 혁신관련 보고서에서도 그 점을 특히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5년이 경과한 지금 스타트업과 비금융혁신기업들을 위한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은행, 증권사 등 기존 금융기관(financial instrument)들과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삼성전자도 삼성페이로 핀테크 서비스에 가세했다. 현재 핀테크 산업은 크라우드펀딩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 입법과 P2P 제정법이 크라우드펀딩업과 P2P를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등 어려운 상황이다. 소위 JOBs법을 입법한 미국이 2020년 크라우드펀딩 규모가 벤처캐피탈을 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생태계 규제가 초기시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OECD가 회원국들의 기회형 창업(Opportunity startup)과 행정부담(규제)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자료이다. 한국은 조사 대상 23개 회원국 중 최하위인 23위다. 이 아이러니에 윤석열 정부 혁신의 현주소가 있고 개선해야 할 지점이 있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무정부상태로 방치된 블록체인 등 가상자산 관련 생태계도 같다. 문재인 정부의 금융위원장들은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증권성이 인정될 수 밖에 없는데도 이를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상품(증권과 파생금융상품을 통칭하는 개념이다)이 아니라고 강변하였다. 금융위원장들의 발언으로 규제는 한치도 진전을 보지 못했고 혁신시장도 지체되었다. 결국 도전적인 프로젝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유투브에나 존재할 다단계 코인들이 차지하였다. 업비트, 빗썸 등 거래소에만 존재하는 코인들이 난무했다. 하물며 카카오 같은 대기업조차 프로젝트를 제대로 설계하지 않고 섣부르게 출시하여 근래 클레이튼(Klaytn) 프로토콜 설계 문제로 위믹스 등 토큰들이 탈출하여 플랫폼 기능을 거의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가 좌초 위기에 처했다.

테라-루나 사건은 사실 예정된 참사다. 문재인 정부의 블록체인, 혹은 코인을 금융상품에서 제외함으로써 적용할 법규를 찾지 못했다. 클레이튼 같은 도전적인 프로젝트들 조차 정밀한 설계와 검증을 거치지 않고 거칠게 론칭되었다. 테라-루나의 위험을 몇몇 엔지니어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먼저 알았다. 국내 언론과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SEC가 테라폼랩스(TFL)와 권도형 조사를 위해 직접 소환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하였음에도 TFL과 권도형이 SEC를 상대로 조사 관할권이 부재하다는 제소에 대해 당당히 맞서 싸우는 이미지 보도로 일관했다. 설사 그들의 SEC 관할권 부재 주장이 맞다고 해도 국내 자본시장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정도는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일이었다. 루나와 테라, 미러프로토콜 등의 위험을 경고하고 거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나의 의견에 단 한사람이라도 동의했다면 지금의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언론들이 권도형의 싱가폴 집까지 찾아 가는 정성의 백분의 일만 쏟았다면 사전 위험을 예견하고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증권형과 비증권형을 구분하고 증권형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생태계를 디자인 하는 것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블록체인이나 가상자산 관련 규제설계의 중심에 업비트, 빗썸 등 중앙화된 거래소(CEX)를 상정하고 있다. 출발이 잘못되었다. 모든 중심에는 도전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상정해야 한다. 거래소 중심의 생태계는 필연적으로 거래소의 한국은행화를 낳아 ‘로비’, ‘브로커’ 같은 음습한 단어를 남길 뿐이다. 지금까지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국내 가상자산들 중에서 백서에 기술된 대로 생태계를 형성한 프로젝트가 있는지 묻고 싶다. 그 이유가 단순히 거래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모두 문재인 정부의 규제설계 부재와 무지가 낳은 산물이다. 

윤석열 정부는 중앙화된 거래소 중심의 생태계를 설계해서는 안된다. 편의성을 앞세워 거래소, 교수나 연구원 중심의 모임으로 규제를 설계해서는 결코 혁신적인 생태계가 창출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보임되어 이를 꿰뚫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중앙화된 거래소 시장에는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과점시장을 두고서는 투자자보호도 도전적인 프로젝트의 현실화도 어렵다. 다행인 것은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지명자가 이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것이다. 혁신과 도전, 경영과 지배구조, 자본시장과 경쟁에 정통한 전문가다. 혁신시장에 존속 가능한 공정한 거래구조를 만들고, 시장진입과 경쟁의 장애요소를 제거할 것을 기대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업계가 첫번째로 초청해야 할 규제설계자다. 2008년부터 진행되어 2013년에 본격화된 영국 핀테크, 규제샌드박스 진행 결과들을 보자. 누가 주로 이용하고 혁신을 했는지 결과는 자명하다.

2016년 부터 금융혁신 제도로 정착시켜 온 영국의 경우, 규제샌드박스 대상으로 지정받아 서비스를 시행한 기업은 대부분 스타트업과 소규모 기업들이었으며, 소매금융(Retail Banking), 보험상품, P2P, 투자(Retail Investment) 등 다양한 금융분야의 혁신서비스가 규제샌드박스 내에서 와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진행했다. 윤석열 정부의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과 이복현 금감원장이 현명한 규제설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이 창업국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혁신의 결과를 중시하지 않고 투입을 기준으로 규제설계를 한다면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명제다.

글쓴이 : 배재광 월드블록체인컨버전스 의장, 인스타페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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