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레미콘·자동차·유통업계 물류대란 '직격탄'
반도체 업계로 확전 양상…가전 업계도 긴장
"용차도 없어" 주류 업계 대체 차량 섭외 '빨간불'
우체국 택배노조 쟁의 찬반투표, 총파업 70% 찬성

구호 외치는 화물연대 노조원들./사진=연합뉴스
구호 외치는 화물연대 노조원들./사진=연합뉴스

[포쓰저널=서영길·박소연·문기수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소속 화물차주들의 총파업 나흘째를 맞은 산업현장 곳곳에서 물류 차질이 빚어지며 공장 가동이 속속 중단되고 있다.  

우체국 택배노동조합도 총파업을 결의하면서 물류 차질이 산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10일 오후 관련 업계 상황을 종합하면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시멘트, 레미콘, 자동차, 유통업계가 ‘물류 대란’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피해 규모가 눈덩이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화물연대는 안심운임제 일몰 폐지 및 확대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으로 투쟁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일부지역에선 크고 작은 충돌로 30여 명의 조합원들이 경찰에 체포되는 사태도 빚어졌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9일 기준 시멘트 일일출하량은 1만8800톤으로 평소의 10.8% 수준에 그쳤다. 일일 손실액은 150억원이다. 7일부터 9일까지 총 매출 손실은 450억원으로 추산된다.

시멘트 출하가 막히며 연쇄 반응으로 대부분의 레미콘 생산 공장도 가동을 멈춘 상태다. 시멘트를 원료로 하는 레미콘 업계의 경우 전국 1085곳의 공장 중 60%에 해당하는 650여곳 이 문을 닫은 것으로전해졌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출하되지 못하고 재고로 쌓인 시멘트가 생산공장과 유통기지 등에 총 87만톤까지 늘었다”고 했다. 시멘트 업계에서는 파업이 일주일 동안 이어지면 피해 규모가 1000억원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철강 제품 이동도 멈춰 있는 상태다. 현대제철의 경우 일일 철강 제품 출하량이 4만톤에 이르지만 파업 첫날부터 출하가 멈춰섰다.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현대제철 제철소밖으로 나가지 못한 제품의 수량은 총 12만톤에 이른다.

때문에 건설현장에선 당장 다음 주부터 건자재가 없어 공사를 멈추는 공사장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는 생산과 출하 모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울산공장에서는 일반직원들이 직접 운전하는 방식으로 완성차 탁송에 나서기도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울산공장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며 "탁송은 오늘(10일) 하루 정도만 직원들이 한다. 나머지는 울산 쪽에서 여러가지 조치를 강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앞서 이동석 현대차 대표는 9일 열린 노사 교섭 자리에서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완성차 물류 거부로 생산손실이 2000대 가량 발생했다”고 밝힌바 있다.

기아의 경우 아직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출하는 차질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전날인 9일처럼 직원들이 완성차를 운전해 적치장으로 옮기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나흘째인 10일 오후 광주 서구 기아차 생산 공장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 나흘째인 10일 오후 광주 서구 기아차 생산 공장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반도체 업계도 ‘파업 영향권’

화물연대본부가 9일 반도체 물류까지 막겠다는 점을 공식화하며 반도체 업계 역시 위기감이 흐르는 분위기다.

화물연대 울산지부는 9일 오후 1시부터 20분가량 울산 온산공단 내 고려아연과 LS니꼬동제련 두 곳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 제련소에서는 반도체 공정에서 웨이퍼 세정용으로 활용되는 고순도 황산을 만들어 납품한다.

이날 시위가 반도체 물류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않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화물연대 총파업이 추후 반도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칠까 부심하는 상황이다.

만약 화물연대가 반도체 원료사를 집중 타깃으로 두고 물류 거점을 봉쇄할 경우 반도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는 물론 반도체가 탑재되는 삼성전자·LG전자 가전 부문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 측은 반도체 제품 물류는 아직 여파가 없다면서도 파업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전 분야는 파업이 예고된 때부터 장기화에 대비해 제품 선출하를 한다든지 인근에 창고를 마련해 재고를 쌓아 놓는 등의 대책을 마련해 놓은 상황이다”고 했다.

LG전자는 지난주부터 화물노조 파업 관련 태스크포스(TF) 상황실을 가동해 반도체를 포함한 물류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파업에 대응하고 있다.

◇ 주류 업체, 운송사 바꾸는 등 ‘고육지책

유통업계는 파업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화물연대 조합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주류 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물류 운송에 차질을 빚고 있는 주류 업체들은 제품 출하 정상화를 위해 다른 운송사와 계약하는 등 고육지책을 내고 있다.

주류 도매상들은 공장으로 찾아가 직접 물건을 실어 나르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긴급 투입할 용차 확보에 이미 빨간불이 켜지며 업체들이 차량 수배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현재 주류의 공장 출고율은 50%를 밑도는 수준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수양물류 측이 계약을 맺고 있는 명미인터내셔널과 계약 해지를 진행했고 10일 새로운 물류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며 “화물차의 공장 진·출입 역시 전보다는 수월해진 상황으로 출고율을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하이트진로는 이천·청주공장의 화물 운송 위탁사인 수양물류 소속 화물차주 130여명이 파업에 가담하며 출고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제품 출고율이 파업 첫 날인 7일 38%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간지난 7일 경기 이천시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에서 제품을 유통받지 못한 주류 도매상들이 직접 트럭을 끌고 와 제품을 옮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들어간지난 7일 경기 이천시 하이트진로 이천공장에서 제품을 유통받지 못한 주류 도매상들이 직접 트럭을 끌고 와 제품을 옮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오비맥주는 대체 차량을 동원해 출고율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오비맥주는 위탁 운송사에 속한 180여명의 화물차주 중 대부분이 화물연대에 소속된 관계로 주류 운송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현재 오비맥주는 여러 곳의 위탁 운송사와 계약을 맺고 주류 운송을 하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임시 화물차량을 최대한 섭외해 출고율을 높일 계획이지만 화물차 섭외가 쉽지 않다”며 “출하량이 전체 물량의 20%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도 파업으로 인한 물류 운송에 당장 큰 차질은 없을 것이라 전망하면서도 파업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면 직·간접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대비하고 있다.

◇ 택배 업계도 들썩...우체국택배노조 "총파업" 가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인 전국택배노동조합 산하 노조들에서도 다시 파업 등 분규가 가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체국택배노조는 9~10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노조원 2511명 중 90.6%가 투표에 참여해 70%의 찬성율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이날 밝혔다.

노조지도부는 13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결과를 본뒤 18일 1차 경고 파업을 목표로 향후 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13일엔 우체국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14일에는 아침 집회 및 지사장 항의방문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우체국택배노조는 우정사업본부가 7월 1일부터 적용하는 위탁배달원 계약서가 '쉬운 해고' 등 노예계약성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이 계약서엔 택배 노동자가 위탁자인 우정사업본부 산하 우체국물류지원단의 이미지를 해치는 현수막을 차량에 붙이거나 서비스 개선 요청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 정지나 해지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위반 행위가 처음 발생했을 땐 '서면경고'를 하고 2회 발생 시 '10일간 계약정지', 3회엔 '30일간 계약정지', 4회 때는 '계약해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배달 위탁물량의 '기준물량'을 일·월 단위가 아닌 연 단위로 계산하고 이를 8% 넘게 줄이려면 상호 협의를 거쳐야 하고, 우편물 감소 등 사업환경에 따라 계약 해지도 가능하게 됐다고 노조는 지적했다.

한진택배 노조도 4일부터 서울 강동, 경기 광주,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토요일 부분 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한진택배 노조 측은 "쿠팡이 그동안 한진에 맡겼던 택배 물량 중 절반 이상을 자체 배송하기로 결정하며 일감이 줄고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사측이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CJ대한통운 노조도 "사회적 합의안이 현장에서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며 매주 월요일 부분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 협상안도 없이 화물연대 만난 국토부...장관은 용산공원으로 

1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가 마주 앉았지만 돌파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협상장에 아예 나오지 않았고, 국토부는 협상안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품목 확대에 대한 국토부의 약속과 현실적인 유가대책마련 방안을 요구했다"며 "국토부는 내부 논의를 거쳐 구체안을 마련해서 나오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날 교섭에는 화물연대 이봉주 위원장과 국토부 어명소 2차관이 마주했다. 화물연대는 애초 원희룡 장관의 참석을 요구했지만 원 장관은 용산공원 시범개방 행사 일정과 겹친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이 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 총파업 돌입에 따른 비상수송대책 등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이 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민주노총 화물연대 총파업 돌입에 따른 비상수송대책 등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화물연대 파업 관련 질문에 "정부가 노사 문제에 깊이 개입하면 노사간에 원만하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이 전혀 축적되지 않는다"며 "(파업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법과 원칙, 중립성을 가져야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자기들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된다"며 "그동안 정부의 개입이 노사 문제와 문화를 형성하는데 바람직했던 것인지 의문이 많다"고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9일부터 10일 새벽까지 화물연대 조합원 4200여명이 곳곳에서 철야 대기하며 파업을 계속했다.

국토부는 이들을 포함해 화물연대 조합원 2만2000명의 약 35%인 78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전날보다 600여 명 늘어난 규모다.

파업 참여 인원이 늘어나며 경찰에 연행되는 조합원들도 속출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시작한 7일부터 이날까지 업무방해 등 혐의를 받는 조합원 30여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지역별로는 경기남부에서 22명, 부산에서 2명, 광주에서 1명, 울산에서 4명, 충남에서 6명, 전남에서 2명이 연행됐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폐지 철회 등을 주요 조건으로 내걸고 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벌이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 기사들의 적정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로, 올해 말 일몰 폐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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