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광

 

12일 2021서울국제도서전이 끝났다. 두번이나 전시회장을 둘러 보았지만 여전히 무언가 허전함이 남아 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한국은 예로부터 콘텐츠 강국이다. 현재 5,000만명이 넘는 사용자를 가진 문자 중에서 가장 최근에 만들어 진 한글이라는 문자를 가진 나라다. 독자적인 문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유를 하고 그 결과들을 문자에 실어 남겼다. 나는 어린 시절 ‘무정’, ‘삼대’ 같은 소설과 ‘진달래꽃’,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같은 시를 읽으면서 그 감수성과 삶에 대한 달콤한 환상의 세계로 초대되었으며 대학시절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노래했고 ‘껍데기는 가라’고 총을 향해 외쳤다.

그런데 문자를 창제하였던 그 손으로 우리는 ‘도서정가제’라는 희한한 규제도 만들었다.2014년 이후 책은 일상으로부터 멀어 졌고 꼭 필요한 사람만 사는 필수재가 되어 갔다. BTS의 노래와 영화 기생충은 빌보드와 아카데미 시상대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정작 그 가사와 대사의 근간을 이루는 ‘한글이라는 문자’로 만드는 콘텐츠는 ‘한자한자를 갈고 닦는 절차탁마’의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그 원인은 수십가지가 있을 것이다. 문자라는 매개체가 갖는 한계, 디지탈이 심화되면서 ‘영상’과 ‘이미지(형상)’이 갖는 힘이 다시 문자를 해체하고 있다는 점도 맞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사고의 틀’ 자체인 문자와 언어를 떠나서는 영상이라는 매체도 이미지라는 매체도 그 힘을 잃게 된다. 나는 1990년데 라스베거스에서 개최된 ‘컴덱스’(Comdex)가 우리에게 준 상상력을 기억한다.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One more Thing’이라는 말과 함께 꺼내 든 ‘아이폰’에서 느꼈던 전율을 기억한다. 

전시회는 그런 존재다. 한 사회와 시대의 비전과 아이콘을 만든다. 나는 2019년부터 서울북앤콘텐츠페어를 준비해 왔다. 한국 콘텐츠(K-콘텐츠)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큐레이션플랫폼을 인스타페이에서 만들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드디어 올해 SBCF 조직위원회와 인스타페이가 주관하는 ‘2021 서울북앤콘텐츠페어(Seoul Book & Contents Fair: SBCF)’를 11월 7일 ~ 1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다. 

서울북앤콘텐츠페어(SBCF)는 문자와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원형으로서의 책, 이미지와 영상을 매개(media)로 하는 웹툰과 영화 등을 하나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7천만명이 사용하는 문자와 언어에 갇힌 콘텐츠를 70억명을 대상으로 사유하고 창작할 수 있는 콘텐츠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는 자리다. 문자와 영상, 이미지를 이용한 융합적인 사유가 가능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MZ세대 신인을 발굴하는 장이기도 하다. 
나는 조직위원장으로서 문자와 이미지, 영상을 포섭하는 사유와 표현의 틀을 매개로, 한글을 협소한 사유의 틀에 얽매이게 만든 출판, 제작, 도서정가제 등 창작시스템을 극복하여, 사람과 콘텐츠가 중심이 되는 패러다임 전환의 길을 모색하는 “책과 콘텐츠에 대한 아주 다른 생각” 이라는 주제로 이 행사를 준비한다. 

지난 수년간 도서정가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피폐해진 책과 콘텐츠 시장에서, 아주 ‘다른 생각과 모색’을 기술과 혁신을 통하여 안착시키는데 기여한 인스타페이의 4세대 큐레이션플랫폼을 이용할 예정이다. 책 뿐만 아니라, 웹툰, 영화, 게임 분야 등의 콘텐츠 생태계가 인기작가, 대형 서비스업체 위주로 산업화되어, 상상과 도전이 메말라 가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 온 사람들도 함께 힘을 모았다. 

SBCF 조직위원회는 신춘문예 등 낡은 틀을 깨는 신인작가 발굴 플랫폼으로서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서울북앤콘텐츠페어(SBCF)에 출품된 작품을 크라우드펀딩 등 제작, 배포하는 큐레이션플랫폼을 완성하여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 계획이다.

나는 우리세대와 달리 문자와 이미지, 영상 등을 매개로 하는 융합적 사고와 표현이 가능한 MZ세대는 한글문자를 협소한 틀에 가두지 않고 보편적인 사유가 가능한 문자와 언어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SBCF가 지향하는 ‘발굴과 교류’라는 비전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행사와 함께 인스타페이가 주최하고 진행하는 제2회 블록체인영화제는 NFT(대체불가토큰)를 기반으로 영화제작과 공유(유통)에 대한 새로운 모색을 계속할 예정이다.

1998년부터 영화잡지 키노(KINO)를 발행하면서 부산영화제를 후원했다. 그 길이 처음부터 비단길도 아니었다. 아시아 영화계의 후발주자였지만 결국 2000년대 들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였다. 걸출한 제작자와 기획자, 감독과 배우들이 거기로부터 시작했고 경험을 축적했다. 다만, 아직도 콘텐츠의 원형같은 문자와 언어는 제자리 걸음이고 뒷걸음치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새로운 단어와 문장은 발굴되지 않고 있으며 사고의 전화도 패러다임의 변화도 없다. 생태계의 혁신은 그냥 오지 않는다. 뼈를 깍는 노력과 아픔 속에서 배태되고 창출된다.

2021 서울국제도서전의 화려함에 가려 진 속내를 보게 되고, 도서정가제라는 책을 필수품으로 만든 재주(?)를 가진 사람들에게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100여명의 이노베이더들을 떠밀면서 함께 ‘절차탁마’의 길을 가고자 한다. 

글쓴이: 배재광 인스타페이 대표

저작권자 © 포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