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포쓰저널=김성현 기자]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보면 “내 탓, 내 책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펀드를 판매한 금융사(은행, 증권사)의 경우는 자신도 피해자임을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몰랐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알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5000억원대 펀드 환매 중단이 예상되는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1조3000억원대 젠투파트너스 펀드 ▲1000억원 규모의 트랜스아시아(TA)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 등 모두 환매 중단이 선언되기까지 판매사들은 운용실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검찰, 금융당국 등이 조사를 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해당 펀드의 정확한 운용실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판매사들은 수익성 높고, 안정적인 상품으로 소개하며 펀드 상품을 판매하는 데 정작 그 실체는 자신도 모른다.

그럴듯한 회사이름에 복잡한 투자설명서, 회사 대표는 한국 성씨에 리차드, 제임스 등 들어봤을 듯한 외국이름을 쓰면 좋다.

전직 정·재계 인사들의 친필사인이 들어간 자문단 명단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홍콩계, 싱가폴계 운용사라고 하면 왠지 더 많은 수익을 안겨다 줄 것 같다.

투자자들이 사모펀드와 관련해 확인 가능한 정보는 여기까지다.

실제 투자설명서대로 투자금이 운용되고 있는지, 부실 자산에 투자한 것은 아닌지 등은 운용사 외에 누구도 알 수 없다.

NH증권은 지난달 19일 옵티머스 관계자에 대한 사기혐의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회사도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와 이사 ㅎ법무법인 윤모 변호사가 펀드 명세서를 위조해 수탁은행, 예탁결제원 등에 보내는 방식으로 판매사와 투자자 모두를 속였다는 것이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운용사가 예탁결제원과 수탁은행을 속인 상황에서 판매사가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없었다”며 “단지 사모라는 이유로 어떠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아 사실상 사전 실사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홍콩계 사모펀드 운용사 젠투파트너스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서도 판매사들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젠투는 최근 1조3000억원 규모의 채권형 펀드의 환매 연기를 국내 판매사에 통보했다.

환매 연기 펀드 증권사는 신한금융투자 약 4000억원을 비롯해 키움증권, 삼성증권 우리은행, 한국투자증권, 하나은행 등이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는 추측성 내용만 돌고 있다.

각 판매사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젠투 펀드 환매 중단 사태의 원인은 신한금투가 판매한 ‘KS아시아앱솔루트리턴 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파생결합증권)다.

KS아시아앱솔루트리턴 펀드는 최대 원금의 4배에 달하는 대출을 통해 채권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높인 상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다소 무리한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른바 레버지리 전략을 취하는 펀드는 흔하다”며 “이는 수많은 펀드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높은 수익성으로 더 많은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판매사에 따르면 젠투가 해당 펀드 운용 과정에서 대출받을 때 전체 펀드 규모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운용자산 회수조건(AUM 트리거)'을 삽입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일부 채권의 가격이 급락한 후 운용자산 규모가 축소되자, 운용사는 AUM 트리거 작동을 막기 위해 다른 펀드 환매까지 환매를 연기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젠투 파트너스가 일부 판매사와의 비공식 자리에서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젠투파트너스가 각 판매사에 공식적으로 전한 환매 중단 이유는 채권 가격 급락에 따른 회복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환매 연기 이유도 젠투파트너스가 공식, 비공식을 나눠 전할 정도로 제멋대로다. 투자자들은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에 가슴만 조려야 한다.

신한금투 관계자는 “젠투가 공개하기 전에는 판매사가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다”며 "AUM트리거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는 운용사의 판단과 결정이며 전적으로 운용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은 6일부터 판매사를 상대로 현장조사에 들어갔지만 모든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감원은 홍콩 금융당국과의 공조를 통해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지만 금감원의 홍콩사무소가 2018년 초 폐쇄돼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젠투파트너스의 신기영 대표(영문명 Kyle Shin)도 잠적한 것으로 전해져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KB증권에 따르면 회사가 판매한 ‘KB able DLS 신탁 TA인슈어드 무역금융` 상품이 4월 만기 상환에 실패하고 7월까지 3개월 간 환매가 연기됐다.

TA자산운용은 7월 만기 상품에 대해서도 판매사에 3개월 환매 연기를 요청한 상태다. 환매가 연기된 이들 두 상품의 판매 규모는 1000억원이다.

해당 상품은 NH투자증권이 발행하고, TA자산운용이 운용하는 무역금융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DLS상품이다.

무역금융펀드는 무역업체의 신용장 거래 등 무역금융에서 발생하는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펀드다.

KB증권 등에 따르면 운용사는 “당초 펀드를 설정하며 기초자산이 되는 모든 기업이 무역 보험에 가입돼 있어 원금 손실 위험이 낮다”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과 KB증권은 이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지만 운용사의 주장처럼 실제 모든 무역업체가 무역보험에 가입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한 판매사 관계자는 환매 중단 이유에 대해 “운용사는 모든 기초자산이 되는 모든 무역업체가 보험에 가입됐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일부 비우량 기업만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며 “보험가입이 필요없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정상 무역거래를 하지 못해 결국 환매 연기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 내부 판단”이라고 말했다.

추측에 불과한 판단이지만 해당 사태 역시 제대로된 운영실태를 파악하지 못함으로 발생했다.

금융당국은 이제와서 3년에 걸쳐 사모펀드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조사 방법은 판매사 주도로 운용사·수탁사·사무관리회사(예탁결제원)의 자료를 상호 비교하는 4자 교차 점검 방식이다.

이는 그 동안 판매사들이 진행한 실사 방식과 같다. 운용사가 펀드 명세서를 위조하면 수탁사나 예탁결제원은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결국 다시 제2의 라임, 옵티머스 사태가 일어나고 운용사의 범죄 행위에 따른 투자자 피해로 막을 내린다.

판매사 역시 피해자를 자처하면서 투자자들은 당장 하소연할 곳이 사라진다.

사모펀드 운용상황을 완벽히 공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판매사 등이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제도가 절실하다.

더 이상은 몰라서 책임을 안지는 사태가 벌어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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