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농협중앙회장.

[포쓰저널=김지훈 기자] 농협에 또다시 계열사 최고위층 싹쓸이 물갈이 인사철이 도래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취임 한 달 만이다. 

농협은행 등 계열사 대표와 주요간부 11명이 한꺼번에 사직서를 냈다. 이중 대다수는 수리됐고 일부는 반려됐다고 한다.

이성희 회장이 전임자 색깔을 빼고 자신의 농협 만들기에 돌입한 것으로 관측된다.

최고 수장이 바뀌었다고 산하 계열사 경영층을 한꺼번에 물갈이하는 것은 민간 기업에서도 이제는 가급적 지양하는 봉건적 인사관행이다.

사기업도 아닌 농협에서 이런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농협중앙회장은 엄밀히 보면 간접선거로 뽑힌 자원봉사자에 불과하다. 농협의 존재 이유인 농민복리 극대화가 회장이 할 일이다. 자기 사람 심기나 군기잡기를 통한 조직 장악이 주업이 될 수는 없다.

농협 계열사 대표들의 경우 주총, 이사회, 정관 등에서 정해진 임기가 있다. 회장이 바뀌었다고 이런 정상이 싹 무시되고 어느날 갑자기 일괄 사표를 제출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이다. 

농협 조직을 위해서도 좋을 게 없다. 외부의 인사청탁이나 압력도 이런 와중에 빈틈을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생긴다. 이번에도 벌써 일각에선 정치권 입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실 여부를 떠나 싹쓸이 물갈이 인사가 반복되는 한 이런 의혹과 논란을 불식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농협은행 등 금융계열사의 경우 신용·경제 분리 원칙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이 신용(금융)을 여타 부문에서 분리한 것은 회장을 비롯한 중앙회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 경영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 회장의 싹쓸이 물갈이 인사가 이런 기조마저 흔들고 농협을 다시 '황제경영' 분위기로 몰고 가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회장으로선 이런 식의 물갈이 인사가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전임 김병원 회장도 2016년 당선 직후 주요 계열사 대표들에게서 사표를 제출받았고 비슷한 물갈이 인사를 했다.

신임 이 회장 입장에서는 기존 간부들을 전면 교체하는 것이 일종의 '적폐청산'이나 새출발의 전제조건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농협 측은 "임원 선임은 후보추천위원회 의지에 따라 이뤄지며 농협중앙회가 인사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런 농협의 주장은 일괄사표와 선별수리라는 봉건적 인사 관행의 반복으로 이미 공허해진 상태다.

이성희 회장이 향후 임기 4년 동안 진정한 농민의 벗으로 무사항행하려면 그에게 주어진 막강한 인사권 행사 원칙부터 현대적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투명하게 제도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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