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서정가제 100만 국민청원 시리즈4

-소위 2014년 도서정가제 체제는 구간행물에 대한 도서정가제를 전격적으로 적용한 반면, 재정가 제도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개정을 단행했다.

-당초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법제도의 개정 과정은 민주적 절차가 보장되어야 하므로 일반 국민과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공개된 토론이 보장되어야 함에도 도서 소비자인 국민들은 완전히 소외되었다.

 

 

어머니는 유독 비오는 날이면 술을 마셨다. 어머니가 술을 마신 날은 기어코 사랑방에서 어머니의 삼키는 듯한 서러운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첫돌을 갓 넘긴 큰아들을 봉분도 없이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절절함이었다.
유난히 유아 사망율이 높았던 시절, 어느 집이나 자신의 손으로 자식의 옷가지를 태운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현재 중소출판사 사장님들은 자식 같은 책을 자신의 손으로 불태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태워지는 20~30%의 책, 2014년 체제의 비극입니다.

■ 민주적 절차의 상실과 2014년 체제의 종언

지난 7월 15일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 3일까지 도서출판, 유통, 전자출판 등 13개 단체가 참가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여 16차례 회의를 개최하였다고 밝히기 전까지는 도서소비자인 일반 국민들은 협의체에 참가한 단체는 어떻게 선정되었고 논의 과정은 어떠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과연 촛불정부인 문재인 정부의 문체부인가 싶다. 어디에도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프로세스를 거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6월 18일로 예정되었던 2014년 도서정가제 체제의 수호는 문재인 청와대, 실제는 20만 국민청원자들의 한마디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라는 20만 국민청원을 받아 들고도 주인인 국민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익단체들과 부화뇌동한 담당 관료들의 안이한 업무처리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들은 20만 국민청원자를 제외하고 서명하지 아니 한 나머지 5,000만명은 2014년 체제의 옹호자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헌법상 국민으로부터 입법권을 위임 받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단순히 집행하는 자들로서는 민주적 통제에 대한 훈련이 안된 탓이다.

이제 2014년 체제는 종언을 고했다. 헌법과 공정거래법에 반하여 제정된 2014년 체제의 옹호자들은 지난 며칠간 삿대질과 언론질을 통하여 상호 돌아 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있다. 그나마 문재인 청와대의 20만 국민청원인들로부터 받은 지적이 뼈아픈 문체부로서는 조력자들에게 20만 국민청원자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아 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외에는 달리 2014년 체제를 수호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애초에 민주적 통제를 위해 필수적인 도서 소비자인 국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고 밀실에서 합의를 거듭했던 협의체로서는 이를 뒤집을 명분조차 없다. 

지난해 20만 국민청원에서 지적된 쟁점들을 협의체가 16차례나 회의를 할 동안 논의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소비자 후생을 위해서 재정가 기간을 6개월 단축하여 12개월로 한다는 합의 외에는 3년 후까지 2014년 체제를 연장하는 합의를 하였다. 국민청원 이후 협의체에 새롭게 참여한 단체들도 결국 2014년 체제를 온존하는데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결국 누구도 아닌 2014년 체제의 강고한 옹호자들이 스스로 2014년 체제를 허물어 뜨린 것이다. 2014년 체제는 종언을 고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이 단순히 2020년 체제여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는 20만 국민청원을 한 진정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민주적 합의과정을 담보할 체제가 필요하다.

■2014년 체제의 핵심은 재정가 제도의 신설과 구간의 정가제 적용

2014년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 소위 도서정가제 법규 중 재정가 규정에 대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22조(간행물 정가의 표시 및 판매)① 생략.
②발행일부터 18개월이 지난 간행물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가를 변경할 수 있다. 이 경우 정가표시는 제1항을 준용한다.

시행령에서는 재정가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출판사는 재정가를 변경하려는 달의 전달의 15일까지 진흥원과 사업자단체 등에 해당 간행물과 관련된 소정의 사항과 재정가 사항을 미리 알리는 등 엄격한 절차규정에 따라야 한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실제로 재정가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이해관계 만이 아니라 법절차적인 규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지난 6년간 겨우 13,300여 종의 책만 재정가 되었고 그것도 올해 들어서는 가격을 올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은 파쇄되는 책 수량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실사를 하자).

이와 같이 2014년 체제하에서, 재정가 제도는 원래 구간행물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을 위해 새롭게 신설된 규정이다. 법제도적으로는 출판사들로 하여금 재정가를 편하게 하기 위하여 규정하였다고 설명을 하고 있으나 기실 재정가제도는 출판사들에게 자유재량인 재정가의 권리를 법에 규정함으로써 엄격히 제한하는 성격을 가졌다. 출판사들은 법률의 재정가 규정에 의해서 특별히 창출된 권리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래 가지고 있던 권리를 법령에 의하여 제한 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제22조 제2항과 동 시행령 등은 위헌일 가능성이 높은 규정이다. 

당연히 이번 개정에서는 도서재정가의 폐지여부와는 별도로 삭제되어야 할 규정이다. 도대체 이런 법률이 어떻게 버젓이 입법이 되었으며 구간에 대해 도서정가제가 적용될 것에 대한 대체적인 제도로 설정되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재정가 제도는 저작권자나 출판사 등 생산자가 언제라도 행사할 수 있는 자연권적인 성격의 자유재량권이라면 도서정가제는 최종 판매자인 서점의 가격결정권을 제한하는 성격이므로 그 성격상 대체될 것이 아니다. 

■ 바보야, 문제는 재정가야

요즘 도하 신문이 어지럽다. 도서정가제를 옹호하던 출판단체 등이 ‘밀실합의’를 걷어 찬 문체부의 용기를 성토하는 기사로 넘쳐 난다. 지난 1년간 20만 국민청원자들과 도서 소비자 전체를 걷어 차고 ‘밀실합의’를 통하여 다시 3년의 연장을 획책했었던 천기가 누설되었으니 성낼 만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20만 국민청원을 했었던 도서소비자들로서는 문재인 정부인 문체부의 배신에 씁쓸할 수 밖에 없다.
그 도하신문에 올라 오는 내용은 이제껏 공개적으로 듣지 못하던 내용들이다. 도서정가제가 중소출판사들의 생존을 위해서라거나 지역서점의 어려움들이 지난 6년간 도서정가제로 인하여 해소되었다는 주장은 생경하다 못해 아이러니하다.

먼저 중소출판사들은 지금 안녕하신가요? 중소출판사 사장님들이 계시지 않아서 종내 답을 듣지 못할 것 같다. 지역서점이 출판사들의 공급률에 의하여 팔 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아직 지역서점조합연합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출판사나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겠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는 것은 과문한 탓인가. 현재 지역서점은 책을 팔기보다는 ‘도서관, 정부기관, 공공기관 등’에 ‘납품권’을 따는 것에 생존을 걸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서점들이 책을 팔아서 생존을 도모하려면 공급률은 대형서점과 동일하게 조정되어야 하고 도서정가제와 재정가 제도가 없어 져야 생태계 혁신이 가능하다. 작은 오프라인 서점의 무기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

도서출판 생태계의 혁신을 위해서는 도서정가제가 폐지되어서 새로운 서점 생태계가 혁신을 할 수 있게 되거나 최소 6개월 지난 구간에 도서정가제 적용이 배제되고 재정가 규정이 폐지되어 출판사에게 재정가 재량권이 다시 주어져야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청원에 참여한 20만 도서 소비자인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문재인 정부인 문체부가 해서는 안된다. 밀실합의는 더이상 용납될 수 없다. 제도에 대한 객관적 검토와 20만 청원을 대표하는 완반모 등이 공개적인 토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도서출판 생태계 위기의 원인은 ‘완전’ 도서정가제의 미도입이 아니라 이미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완벽한 도서정가제, 2014년 체제와 그때 규정된 재정가 제도가 위기를 초래했다. 오늘도 중소출판사 사장님들의 가슴에 묻는 20~30%의 책, 바보야, 문제는 재정가 제도야.

글쓴이: 배재광 완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생태계 모임 대표 (law@cyb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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